그제 동지를 넘기고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일요일 인데도
캐롤송이나 깜박이 전등같은 들뜬 분위가 느껴지지 않은 것은
역시 어려워진 불경기 탓인가 보다
내년 경제 지수도 썩 여의치 않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괜스리 우리들도 곰마냥 동면기간이나 있었으면
난방비 걱정이라도 덜으련만...
상무지구 금요장터 단골가게 아저씨께 부탁한 50포기 배추를
며칠전 만기전역한 아들이 기운좋게 쪼개 놓으니 거실 한가득
배추 잔치가 그만 눈앞이 캄캄하다.
마당에선 크다는 그릇마다 그득 그득 채워진 배추가
들물때 길러온 바닷물에 숨이죽어가고, 방안에선 온 식구가 초꽂이불 주위에
둘러앉아 밤이 이슥토록 채썰기랑 양념을 찧어대던 일이 지금도 삼삼하다.
마늘까다가 오금저리고 팔이아프다며 투정끝에 제몫도 못채우고 잠이들면
윗목에선 어머니. 언니 손길만 여전히 분주하신데
한참만에 깬 눈에도 몇 소쿠리씩이나 가지런한 무우채 솜씨가 어찌나 눈처럼 곱던지...
한껏 큰맘먹고 옛날 가족간 맛있었던 기억을 살려, 지금의 가족이라야 외아들뿐인
김장 분위기를 살려보려다, 소금 간치는데만 벌써 소진돼버린 체력이다.
추운날 동네 큰어머니.당숙모.사촌형님들 온통 여인네들 차지인 가운데 한켠에선
간을 맞춰 빛깔좋게 버무리고 다른 켠에선 배추 겨드랑에 켜켜이 속을 채워 공글리고
"옷망친다" 야단맞아가며 노오란 속잎에 양념진듬 한입에 쏙 넣어주던 그 맛이라니!
그렇게 곱던 채는 무슨
마늘 생강 배 무우까지 기계에다 갈아와서 유료 도우미 분들을 모셔다가
앞마당 담장밑에 묻던 김장독대신 김치냉장고에 딸려온 통에 집어넣으니 뚝딱이다.
해가 서산에 꼴까닥 넘어가고서야"이제 내 올 농사도 끝났다"며
후끈거리는 손으로 항아리 뚜껑 훔치시던 어머니 모습이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2006. 12. 24 김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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