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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앞에선 장애가 걸림돌이 안 돼요

예2 2011. 11. 21. 22:46

박씨를 만난 곳은 대전에 위치한 특허청. 일반기계심사과에서 특허심사업무를 하고 있는 박씨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저는 팔과 다리가 불편해요. 다행히 팔꿈치 아래쪽을 움직이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옆에서 공익근무요원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동료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박씨는 현재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한양대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수재였지만 장애가 찾아오면서 시련에 부딪혔다.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불규칙적인 생활로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근이영양증이라는 병이 찾아왔지요. 몸을 혹사시킨 것이 병의 진행속도를 더욱 촉진시켰다고 하더군요.”

처음으로 절망을 맛본 그의 인생은 연이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더니 점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걷는 것이 힘들어졌어요. 그러다가 보행기에 의지해 걷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지금처럼 휠체어를 타게 됐지요.”

카이스트에서 석·박사를 마치면 보통 대기업이나 국가기관 연구소 등에 취업한다. 박씨 또한 연구 분야에 종사하고 싶어 여러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고 서류나 면접에서는 늘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장애1급’이라는 이유로 마지막 관문인 인성검사에서 항상 탈락을 맛봐야만 했다.

지원하는 업무의 특성상 몸을 사용해서 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가 가진 장애가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1년 동안 꾸준히 구직활동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불합격이라는 쓰라림뿐이었다.

“연구소 30곳 정도에 지원했을 거예요.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탈락뿐이었죠. 좌절하긴 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어딘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버팀목이 됐어요.”




계속해서 연구소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내가 진입할 수 있는 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과감하게 생각을 바꿔 방향을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그는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 만한 곳을 일부러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런 고민 끝에 그가 내린 마지막 결론이 공무원이었다. 공직 중에서도 자신의 연구경험을 살릴 수 있는 곳을 고민하다가 이공계 박사들이 심사업무를 하는 곳을 발견했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도전 끝에 지난 2010년 12월, 특허청의 전문계약직에 지원해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눈여겨볼 것은 그가 장애인임에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자격으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심사업무는 실험이 필요없기 때문에 제가 가진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전문계약직으로 일해오던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특허청에서 장애인 특채 모집 공고가 난 것. 올해 4월 중증장애인 특채에 지원한 그는 당당히 합격했다.

현재의 그의 모습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온 이런 열정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딘가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국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소망은 지금의 저를 만든 원동력이에요.”

그는 자신과 같은 꿈이 있지만 장애가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장애인을 일반인과 다름없이 포용해주는 곳이 바로 공직사회예요. 그렇지만 그 꿈을 이루려면 자기 분석과 자신이 지원하려는 분야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죠.”

그는 무엇보다 ‘실력’을 우선순위에 뒀다. “원하는 분야에서 인턴이나 계약직 등의 활동을 통해 업무능력을 검증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채용자의 입장에서는 장애인 채용 시 적응여부가 가장 염려된다고 해요. 하지만 인턴 등을 통해 업무능력을 검증할 수 있다면 채용자에게 확신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업무능력이 검증되자 청사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사업무를 할 때 다른 동료들은 출력을 해서 보는 반면 저는 컴퓨터 프로그램(Adobe Reader)을 이용해 검토합니다. 아무래도 출력물보다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덜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청사에서 저를 위해 Adobe Reader 정식버전을 구입했어요.”

일반기계심사과 이영창 과장은 “박상현 심사관은 비장애인인 우리보다 오히려 특허심사업무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하자 자연스럽게 병의 진행속도도 늦춰지고 있다.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비롯한 갖가지 검사로 병의 진행속도를 파악하는데, 다행히 진행속도가 많이 늦춰졌다고 하더라고요. 심리적·환경적으로 안정이 되다 보니 그런가 봐요.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최고의 심사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과 사진ㆍ하지희 (공감코리아 정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