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민 여성들의 따뜻한 나눔
“참기름을 조금 더 넣을까? 간이 좀 싱거운 거 같지 않아요?” 한파가 몰아친 지난해 12월 중순에 찾은 서울 양천·강서 적십자 봉사관 복도는 고소한 음식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외국인 이민자 주부 봉사단이 모여 인근 홀몸노인들에게 제공할 밑반찬을 만드는 날이었다.
봉사관 부엌에는 하얀 조리사용 모자를 쓰고 노란색 적십자 봉사단 유니폼을 입은 외국인 주부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콩나물을 커다란 함지박 가득 담아 무치고 있었다. 이들은 전국에 있는 주부 봉사회 중에서 유일하게 결혼이민을 온 외국인 주부들로 구성된 ‘다문화 적십자봉사회’다.
“작년에 7명이 처음 시작했는데 지금은 회원이 30명 정도 돼요. 각자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서로 의지하고 돕는 친구가 되었어요.”
다문화 봉사회를 만든 주인공으로 회장을 맡고 있는 일본인 주부 야스다 요코(46) 씨의 말이다. 야스다 씨는 1998년에 용접 기술자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왔다. 열한 살부터 네 살까지 딸, 아들 두 명씩 네 자녀를 키우는 베테랑 엄마다. 이날 네 살짜리 막내아들을 봉사활동에 같이 데리고 온 야스다 씨는 봉사회 덕분에 친구들이 생긴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문화교실이 생겼다고 해서 나오게 됐어요. 외국인 주부들이 와서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요리를 배우는 동안 여기 적십자 주부 봉사회 회원들이 우리가 데리고 온 어린애들을 봐주셨어요. 고마운 마음에 우리도 이분들처럼 봉사하고 싶다고 관장님께 말씀드렸죠.”
이렇게 만들어진 봉사회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홀몸노인을 위한 밑반찬 만들기,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김장 담그기 등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날 다문화 봉사회원들이 만든 음식은 연두부, 코다리 조림, 콩나물 무침 등 세 가지 반찬과 밥 40인분. 아침 9시 반에 시작해 낮 12시 전까지 부지런히 포장을 마치면 배달 봉사원들이 인근 홀몸노인의 집으로 반찬을 나른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이들에게도 봉사활동은 ‘작은 도움을 통해 느끼는 큰 뿌듯함’을 주었고 거기다 덤으로 외국 생활에서 느끼던 이방인이라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덜어줬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애들 키우느라 집에만 있어서 한국어가 많이 안 늘었는데 여기 봉사관에 다니면서 한국말을 정말 잘하게 됐어요. 전에는 제가 한국어를 하면 남편만 알아듣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훨씬 좋아졌어요.”
태국에서 온 사마이(37) 씨는 버스 운전을 하는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온 지 올해로 10년째다. 코끼리 축제로 유명한 수린이 고향이고 여섯 살과 여덟 살짜리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빵을 만들어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갖다드릴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나중에 시간 되면 자기들도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봉사하는 엄마가 존경스럽다며 아이들도 꼭 한번 같이하고 싶대요.”
여기 적십자관에서 같은 태국 출신 친구 세 명을 포함해 베트남, 필리핀, 러시아 등에서 온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게 돼 즐겁다는 사마이 씨는 한국음식 중 잡채 만들기가 자신 있다고 한다. 사마이 씨는 “봉사활동 덕분에 한국음식도 만들 수 있고,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도 사귈 수 있어 일석삼조”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 번 시어머니 생일에 시골집에 가서 한국음식 만들어 드렸더니 아주 맛있다고 기뻐하셨어요. 여기 오는 다른 회원들도 아이 반찬, 식구들 식사 준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좋아합니다.”
양천·강서 적십자 봉사관에서는 월 1회 봉사활동 외에도 다문화 가정주부를 위해 매주 금요일마다 한글 배우기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의 문화교실을 열고 있다. 봉사활동 전날 저녁에는 1년 과정을 마무리하는 종강 파티가 열렸는데 이날 참석한 주부들이 만든 감사 카드가 벽에 붙어 있었다. ‘적십자 봉사관, 그동안 공부도 하고 반찬도 만들고 사람도 많이 알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안칠리’ 등 문법은 좀 어색해도 반듯하고 보기 좋은 글씨체들이 눈에 띄었다.
양천·강서 적십자 봉사관 임효숙 관장은 “외국인 주부들은 한국말도 서툴고 대체로 남편과 나이 차도 많이 나는 편이라 결혼 후에도 한국 생활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며 “봉사관 활동에 참여하면서 생활에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에는 외국인 주부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남편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의 이해와 협조가 중요하다며 ‘찾아가는 아버지 교실’을 열기도 했다. 현재 양천구에만 중국, 베트남, 일본, 태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결혼이민 주부가 약 1천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문화 봉사회를 지원하고 있는 정정례 팀장은 “문화교실만 다닐 때는 손님처럼 느끼던 외국인 주부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같은 적십자 봉사단원이라는 정체성과 자신감,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 다른 봉사회들과 연결해 장애인 체육회 안내활동 등 한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하는 봉사활동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글·오진영 객원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아동 안전 지킴이(북부경찰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영세사업장 근로자 특수건강진단 전액 지원 (0) | 2010.06.28 |
---|---|
[스크랩] 취업 취약계층 1만명에 ‘디딤돌 일자리’ 제공 (0) | 2010.06.28 |
[스크랩] 다문화 교실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가르침 (0) | 2010.06.28 |
[스크랩] 결혼이주여성, 미용·제빵 시험 외국어로 본다 (0) | 2010.06.28 |
[스크랩] 한평범한 주부 ‘야간유치원’ 문 열게 만들다 (0) | 2010.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