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편지
그 사람에 대해서 뭔가 잘못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때
불현듯 편지를 보내고 싶은 때가 있다.
허나 펜을 들어 종이에 써야하는 경우 좀처럼 실행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이라고 그냥 접어버리기 일쑤다.
여백에 담긴 못다 한 애틋함까지 읽으려 애쓰던 열애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단지 편지라는 단어만으로도 굳어진 내 감성을 말랑하게 어루만지며
기억의 수레바퀴를 되돌린다.
가슴 안쪽에서 뽀글대던 무수한 말들을 백지위에 옮기는 것 만으로도
크나큰 위안이 되던 신혼초 !
멀리 돌아도 눈길 멈추게 하던 길모퉁이 빨간 우체통.
군생활 3년동안 내내 세끼 식사처럼 매일 3통씩 속삭이던 열정이
물려받은 유년시절 밥그릇이였다는 투박한 사기그릇에 떠놓은
샘물같은 추억으로 남았다.
최초로 받은 이성 편지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어두운 시골 밤길사이로 수줍게 도망치듯 달아나버린
우리집 제삿날 단자 바가지에 담겨있던 그 편지엔
돼지구정물통 옆으로 나오라던, 굵고 비뚤어진 연필글씨가
도장처럼 선명하다.
사랑채 쪽이 그나마 한적해서 였을까 !
중년의 아낙들이 무슨 할말이 그리 많다고 편지까지 쓸까.
박제된 감성과 시시한 보통의 삶에 대하여
이미 어느 계단에 안착된 레벨에서
꾸어볼 꿈조차 없다는 주부 속내를 방목하고 싶다.
젊은날의 편지가 누군가를 향해 화살표를 띄운 그리움이였다면
중년의 편지는 의식의 자폐에 감금되지 않으려고
내 안으로 내린 두레박이다.
수없이 퍼올리며 발산시킬 수 있는 주부명예기자라는 수신인에게
가슴에 남아 있는 것들을 써내려 가다보면
당장 심하게 겪고있는 갱년기의 고비부터 넉넉하게 내바람 하지 않겠는가.
누렇게 빛바랜 편지 묶음을 풀어보며 풍요로운 사색의 자산을 공글리면서
이 초가을을 미소로 맞이할 채비가 충분하다.
2007년 9월 17일 김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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