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분야

언어·문화·자녀교육…그녀들의 ‘벽·벽·벽’

예2 2011. 11. 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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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거주 외국인 100만 명 시대. 대한민국 인구의 2%를 차지하는 이들이 어느덧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다문화 사회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는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맞아 우리사회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인 이주민들의 삶을 돌아보는 다문화 기획시리즈를 총 9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일본출신 결혼이민자인 하세가와(40·서울 중랑구)씨는 몇해전까지 남편과의 다툼이 잦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거의 싸울 일 없는 사이좋은 부부였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각기 다른 자녀교육 방식으로 번번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하세가와씨는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사랑의 매라고 하여 사랑이 담기면 어느 정도의 매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문화적 차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아이 문제라 양보할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그러기를 잠시. 하세가와씨네는 다시금 안정을 찾았다. 친구 소개로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아 아동양육방문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교육을 신청한 후, 일주일에 두 번씩 아동양육도우미가 집으로 찾아왔다. 도우미는 하루 두 시간씩 하세가와씨와 남편을 마주앉혀놓고 무엇이 문제인지, 그에 대한 서로의 생각은 어떠한지를 깊이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도와줬다. 상대방, 그리고 상대방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갈등은 조금씩 풀려나갔다.

정부 통계(2009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현황)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전국에는 모두 16만 8090명의 결혼이민여성이 살고 있다. 불과 3년전인 2007년 그 수가 12만 6975명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30%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인 증가에도 불구, 그들 개개인의 삶은 예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결혼초기 의사소통의 어려움에 시달리며, 배우자 및 가족들과의 문화적 차이에 봉착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다시 자녀 교육, 그리고 자기계발이라는 더 큰 문제에 맞딱뜨린다.

한 예로 여성부가 운영하는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1577-1366’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총 7만여건의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대다수는 가족갈등과 부부갈등(23.0%)과 이혼관련 법률상담(15.9%)에 관한 내용이었다. 체류나 노동(13.8%), 가정폭력이나 성폭력(9.0%) 등에 대한 문의도 적지 않았다.

연도별로 보면 상담건수는 2007년에 1만 3277건, 2008년에 1만 9916건, 그리고 2009년(~10월까지) 3만6348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존재에 대한 인식이 많아져 이용자가 늘어난 까닭도 있겠지만, 그만큼 여전히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가족내 갈등과 사회적응 등에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결혼이민자 추이 /  출신국 분포(2009)

 
“언어 그리고 문화 장벽을 뛰어넘어라”

현재 결혼이민여성의 대다수는 결혼초기 언어소통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부부간의 갈등이나 고부간의 갈등 등도 대부분은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의 한계로 유발되기 일쑤이다. 자녀 양육이나 기타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언어는 가장 큰 장벽이다. 그만큼 언어교육이 필요한 까닭이다.

2006년 보건복지부는 전국에 21개소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2009년 현재 159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결혼이민여성 가정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및 다문화사회 이해교육, 가족교육, 상담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전국에서는 모두 1만 100명이 한국어 교육을 수강했으며, 사정상 직접 센터에 나오지 못해 집으로 방문 교사를 부른 사례도 6200명에 달했다.

한 결혼이민여성이 가정방문 한국어교사와 함께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한 결혼이민여성이 가정방문 한국어교사와 함께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현재 결혼이민여성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한 서비스는 이밖에도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먼저 정착한 이민자들을 통·번역사로 채용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에 배치, 각종 상담이나 궁금증 해결을 도와주고 일상 생활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 등이다.

1년에 네번씩은 베트남, 중국어 등 9개 언어로 생활·정책 정보매거진 ‘레인보우 플러스(Rainbow+)’도 발간하기도 한다. 올해 2월에는 4개 언어로 다문화가족을 위한 다국어 포털 홈페이지도 개설할 예정이다. 언어로 인한 결혼이민여성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그들이 보다 빠르게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이다.

2009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실적
 
하지만 이같은 언어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결혼이민여성의 어려움은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문화차이’이라는 큰 장애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해피콜사업담당 조경란 팀장은 “결혼이민가정에서는 언어 뿐 아니라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며 “특히 남편이나 시어머니 등 한국인들이 이주여성 출신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교육도 필요하지만, 이들과 더불어 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교육도 절실하다는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자아 실현의 욕구

2004년 한국인과 결혼해 몽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에르드네(30)씨는 결혼 후 5년 동안 늘 마음 한 켠이 답답했다. 자신도 뭔가 일이 하고 싶었지만 세 살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고, 한국생활에 적응하느라 애쓰다 보면 일자리는 너무도 요원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에르드네씨는 마음의 병을 씻었다. 여성부와 YWCA가 진행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사업’에 참여해 바리스타가 되었고, 마침내 취업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는 대학 졸업하고 일을 했었지만 결혼하고는 일을 하고 싶어도 애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또 마땅하게 할 일도 없었구요. 그런데 이제 카페에 취직이 된 거예요. 커피도 만들고, 돈도 벌고, 너무 신나요.” 에르드네씨가 밝히는 취업 소감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메슬로(A. H.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크게 5단계로 분류했다. 인간의 욕구는 가장 원초적인 수준의 생리적 욕구부터 시작해, 안전하고 싶고, 소속감과 애정을 느끼고 싶고, 존경받고 싶으며, 궁극적으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단계로 발전해 간다는 설명이다.  현재 적지 않은 결혼이민여성이 자아실현의 욕구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결혼 초기에는 언어와 자녀양육, 한국사회 적응 등에 정신을 쏟지만 이 단계가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자신만의 일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2009년 현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중 취업에 성공한 이는 19%에 불과하다. 나머지 비취업자 중 절반이 넘는 67%도 취업을 희망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현재 정부는 여성부, 복지부, 노동부 등을 중심으로 각종 결혼이민여성 취·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통해 컴퓨터 등의 취·창업 교육을 진행하고, 결혼이민자들의 강점을 살려 다문화 강사, 원어민 외국어 강사 및 통·번역사 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전국의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알선해 주기도 한다.

울산 YWCA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에르드네씨를 비롯한 결혼이주여성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만들고 있다.
울산 YWCA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에르드네씨를 비롯한 결혼이민여성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만들고 있다.
 
상당수 결혼이민여성이 농촌에 거주하는 것을 감안해 이들을 우수 농업인력으로 키우려는 노력도 추진되고 있다. 농사를 지을 의지는 있으나 기반이 취약한 결혼이민여성들에게 농지와 농기계 등 농사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와 시설을 빌려주고, 경험자들을 통해 다양한 농업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원정책, 결혼이민여성 입장에서 생각하고 만들어야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 아직 결혼이민여성들이 느끼는 불편은 여전히 적지 않다. 완벽하지 못한 언어와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는 언제든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고, 특히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아이들이 겪는 차별의 벽은 무엇보다 결혼이민여성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 결혼의 연차, 그리고 한국 생활의 햇수가 높아질 수록 새록새록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올해로 한국 생활 11년째를 맞는 하세가와씨는 처음 자신이 한국땅으로 시집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굉장히 좋아졌다고 말한다. 다문화지원센터 등이 곳곳에 생겨 한국말은 물론 각종 필요한 교육과 상담을 제공해주는 것이 뭣보다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각 센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부 센터의 경우 결혼이민여성의 입장이 아닌 센터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은 것 같다고.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해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관심, 그리고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